오피니언 [기자 칼럼] '손흥민 읽기' 벤치의 손흥민 표정을 그냥 지나쳤다면 당신은 그가 준비해온 ‘과정’들을 읽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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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필 기자
지난 일요일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 손흥민이 드디어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그 골이 중요했던 것은 지난 시즌 23골을 기록하며 아시아 국적의 선수로는 처음으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이 개막 후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 8경기 선발 출전에도 불구하고 골 맛을 보지 못한 채 급기야는 이날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이런 조건 속에서 완성되는 것인지 이번 시즌 에버턴에서 이적한 히살리송을 대신해 교체 투입된 손흥민은 후반 28분, 수비수 2명을 앞에 두고 페널티 지역 정면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그림 같은 첫 골을 만들어냈다.
이어 후반 39분 해리 케인의 패스를 받아 페널티아크 오른쪽에서 왼발 감아차기로 두 번째 골을 터뜨렸고, 후반 41분에는 왼쪽 측면으로 파고들면서 호이비에르의 패스를 이어받은 후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해 13분 만에 해트트릭이라는 멋진 드라마를 완성했다.
EPL에서 토트넘 구단 소속으로 교체 출전한 뒤 해트트릭을 달성한 것은 손흥민이 최초다.
이 드라마가 완성되기까지 온갖 흉흉한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중에서도 손흥민을 선발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가장 많았고, 실제 레스터와의 홈 경기가 펼쳐진 이날 손흥민은 벤치에서 전반전을 보내야 했다.
경기 중간에 벤치에 앉아있는 손흥민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그 표정은 담담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어땠을까.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는 의심할 수 있지만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보통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많은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과 재계, 문화예술인들도 슬럼프를 겪으며 그 앞에서 조급해 하거나 스스로 의심하면서 무너지는 경우가 오히려 ‘정상적’일 수 있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손흥민은 달랐다. 비록 속마음은 조급함으로 까맣게 타들어갔을지 모르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혹독하게 벼리고 다져온 자신의 능력을 믿었다. 아마 안토니오 콘테 감독과 그의 동료들도, 오늘의 손흥민을 키운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조차도 손흥민을 의심했을지 모른다.
그 의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잡아야 할 당사자, 손흥민은 13분 동안 3골, 해트트릭으로 증명했다. 비록 ‘결과론’일 수도 있지만 짧은 순간 카메라에 비친 전반전 벤치에 앉아있던 손흥민의 표정을 그냥 지나쳤다면 당신은 그가 준비해온 ‘과정’들을 읽지 못한 것이다.

nazo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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